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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년연장에 대하여: 고령자고용 정책과 정년연장

by 토트마트 2025.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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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입니다. 이는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충격적인 수치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문제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정년(60세)'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최대 65세)' 사이의 깊은 소득 공백입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후 연금을 받기까지 몇 년간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은퇴 크레바스'가 노년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정부의 연금 개혁 추진과 맞물려, 이 공백을 메울 가장 직접적인 해법으로 '65세 정년 연장'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논의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신 보고서(고령자고용 정책과 정년연장)는 우리가 막연하게 가졌던 통념을 뒤엎는, 놀랍거나 혹은 불편한 진실 네 가지를 데이터로 명확히 보여줍니다. 지금부터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들을 하나씩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정년 연장은 정말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정년 연장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우려는 '고령자의 일자리를 늘리면 청년이 갈 곳이 없어진다'는 세대 갈등 프레임입니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에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보고서는 '세대 간 직종 격리 지수'라는 흥미로운 개념으로 이 통념에 반박합니다. 이 지수는 특정 직종에서 두 세대가 얼마나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지수가 1에 가까우면 두 세대가 같은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의미이고, 반대로 지수가 높을수록 각자 다른 전문 분야에서 일해 경쟁할 일이 적다는 뜻입니다.

데이터가 보여준 현실은 통념과 정반대였습니다.

  • 청년층(20대)과 고령층(50대)의 전체 직종 격리 지수는 3 이상으로 나타나, 두 세대의 일자리는 '대체성이 약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이 지수가 5.02에서 6.52 사이로 훨씬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대기업 내에서 청년과 고령층의 업무 영역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보고서의 패널 분석은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기업의 총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50대 고용 증가는 오히려 20대 고용에 '보완적' 관계를 보였습니다. 즉, 숙련된 고령 근로자의 고용이 기업 성장에 기여하며 새로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일자리를 빼앗는' 대체 효과는 공공기관처럼 총원이 엄격하게 고정된 극히 일부 경우에만 나타났습니다.

이 발견은 정년 연장 논의의 판을 완전히 바꿉니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파이를 빼앗는 싸움'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을 통해 '전체 파이를 키우는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2. 법정 정년 60세,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용받지 못한다

2017년부터 모든 사업장에 60세 정년이 의무화되었으니, 이제 대부분의 근로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보고서의 데이터는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 첫째, 낮은 정년제 운영률: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정년제도 운영률은 21.0%에 불과합니다. 10곳 중 8곳은 아예 정년 제도가 없는 셈입니다.
  • 둘째, 법의 사각지대: 더 심각한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입니다. 이곳은 근로기준법상 연령을 이유로 해고당해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불가능합니다. 50대 취업자의 24.5%, 즉 네 명 중 한 명이 바로 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보고서는 만약 정년이 65세로 연장되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가 예상보다 훨씬 좁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원은 56~60세 전체 취업자의 최소 15.5%에서 최대 39.9%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최소치인 15.5%는 현재 정년 제도를 이미 운영 중인 사업장의 근로자만 혜택을 본다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최대치인 39.9%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모든 상용직 근로자가 혜택을 본다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60%가 넘는 대다수의 고령 근로자는 법 조항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정년연장의 혜택은 공무원이나 공기업과 같이 현재도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일부 집단만 받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혜택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보호 등 정년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보완이 없다면, 정년 연장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퇴직 후 노년층은 어디로 갈까? 의외의 일자리 허브, '사회복지서비스업'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수많은 고령 근로자들은 실제로 어디에서 새로운 경력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보고서는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놀라운 트렌드를 발견했습니다.

  • 2005년부터 2023년까지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분야에서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14,594명에서 852,692명으로 무려 57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 특히 65세 이상 취업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29.5%로, 모든 산업을 통틀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 그 결과 2023년 기준, 이 분야는 농림어업에 이어 60세 이상 취업자가 두 번째로 많은 산업(13.7%)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사회복지서비스업'이 우리 사회의 고령화 충격을 흡수하는 '사실상의 고용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부의 정교한 설계가 아닌, 돌봄 수요 폭증이라는 시장의 압력이 만들어낸 자생적 해법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정책이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현장에서는 이미 고령 사회의 충격을 흡수할 새로운 고용 모델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4. "정년 연장 찬성! 임금 개편은 반대?" 사회복지 현장의 딜레마

그렇다면 새로운 노년 일자리 허브로 떠오른 사회복지서비스업의 내부는 어떨까요? 보고서는 '사회복지시설장 600명 대상 인식조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년 연장의 성공을 가로막을 수 있는 심각한 딜레마를 발견했습니다.

조사에서 드러난 모순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년 연장 찬성률: 65세 정년 연장 도입에 대해 84.7%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습니다. 현장에서는 고령 근로자의 경험과 안정성을 높이 평가하며 더 오래 함께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 임금체계 개편 찬성률: 하지만 정년 연장의 필수 조건인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현행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35.0%만이 찬성했습니다.

이 모순은 정년 연장 논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릅니다. 고령 근로자를 더 오래 고용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완화할 핵심 장치인 임금체계 개편에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 연공급은 단순한 임금 지급 방식을 넘어, 조직에 대한 오랜 기여와 충성도에 대한 보상이라는 깊은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문제를 단순히 재정적 계산이 아닌, 뿌리 깊은 문화적·구조적 과제로 만듭니다. 재정 의존도가 높은 사회복지시설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이 딜레마는 정년 연장 제도의 현장 안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회복지 분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가진 한국의 많은 기업이 앞으로 겪게 될 정년 연장의 현실적인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마치며 

본문에서 살펴본 네 가지 진실은 개별적인 사실을 넘어, 서로 얽혀있는 구조적 신호들입니다.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신화에 가깝다는 데이터는 정년 연장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현행 제도의 광범위한 사각지대는 법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경고합니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업이라는 자생적 고용 안전망의 등장은 새로운 기회이지만,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내부 딜레마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히 법적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것만으로 과연 우리는 노인 빈곤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진짜 해결책은 법 조항의 숫자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령 근로자를 실제로 고용하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현실적인 딜레마를 풀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숫자 너머의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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