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사 두 번째 시간으로, 원삼국시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부터가 문제인데, 제가 정리할 때에는 제일 간단한 용어라 그렇게 그 시대의 문장들을 묶었습니다. 사실, 제가 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초기국가'라는 용어로 교과서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각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고 통일하려는 노력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여러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삼국시대, 삼한시대, 철기시대 등의 용어가 그 시대를 의미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보통 교과서에서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를 마치고, 삼국시대 들어가기 전 단계, 즉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이게 나라인지 뭔지 잘 모르는 명칭들이 나오는 시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직 왕위의 장자승계가 일반화되지 않은 국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중 고구려만이 고대국가로 이어졌습니다.
원삼국시대
단군신화는 당시 고조선 사회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13세기)와 제왕운기 등 훨씬 후대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 고조선 당시의 직접적인 기록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신화가 과연 기원전 2333년경 또는 고조선 초기의 실제 세계관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천인합일 사상(하늘과 인간의 결합으로 단군이 탄생)이 나타나며, 샤머니즘과 자연 숭배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모습),
사회적 계층과 질서(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구조를 묘사하며, 고조선 사회가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임),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내려옴) 등의 세계관을 단군신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조선은 B.C. 4c 경 요서를 경계로 연과 대립하여 동방의 중심 세력이 됨.
고조선은 현재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 특히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서 지역은 고조선과 연나라의 접경지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 전국시대 전국7웅 중 하나였던 연나라는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고조선은 이를 저지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원전 4세기 중엽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하여 고조선은 상당한 영토를 잃게 되었습니다.
고조선은 8조법에서 계급, 사유, 가부장, 농경, 생명 중시 사회를 보여준다.
8조법은 한서 지리지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전체 8개 조항 중 아래의 3개 조항만이 전해집니다.
-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 도둑질한 자는 노예가 되거나 50만 전을 배상한다
위 3개 조함으로, 계급, 사유재산, 가부장제, 농경 중심, 그리고 생명 중시라는 사회적 특성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B.C. 4c 후 철기가 전래되고 토광묘(중국계).
기원전 4세기 이후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통해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고, 중국계 토광묘를 통해 장례 문화를 발전시키며 동방의 중심 세력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B.C. 2c에 위만조선이 만들어지고(연맹성격), 중계무역으로 강성했다.
위만조선은 기원전 2세기 초 (BC 194년)에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건국했습니다. 이는 기존 고조선 왕조의 통치를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된 정권이었습니다. 위만은 본래 중국 연나라 출신이지만, 고조선으로 망명할 당시 상투를 틀고 조선 옷을 입는 등 조선인임을 내세워 통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지배층에는 위만과 함께 넘어온 중국계 유민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조선 토착민 세력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연합 정권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위만조선은 당시 한나라와 진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독점하며 큰 경제적 이익을 얻고 강성해졌습니다. 이는 위만조선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철기의 보급은 농기구의 변화로 생산의 확대, 목축, 어업의 발달로 많은 초기 국가가 만들어졌다.
철제 쟁기, 괭이, 낫 등은 기존의 청동기나 석기보다 내구성과 효율성이 뛰어나 토지의 경작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는 농업 생산력의 확대를 가져왔고, 잉여 농산물의 축적으로 인해 경제적 기반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철기는 농업뿐만 아니라 목축과 어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철제 도구(예: 낚시 도구, 목축용 칼, 창 등)는 가축 관리와 어로 활동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철기에 의한 농업, 목축, 어업의 생산력 증대는 잉여 자원을 창출했고, 이는 계급 분화와 사회적 복잡성을 가속화했습니다. 잉여 자원은 지배층의 권력을 강화하고, 무역 및 교류를 통해 경제적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초기 국가 형성에 기여하였습니다.
부여는 5부족 연맹체(사출도), 반농반목의 경제, 영고, 순장, 형사취수, 일부다처, 은력 등의 풍속.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부여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4가와 왕을 중심으로 한 연맹체였습니다. 다른 내용은 요령껏 잘 외워두어야 합니다. 다른 초기국가와의 차이점을 묻는 것이, 이 시대 관련 문제에서 자주 출제되는 내용입니다.
고구려는 5부족 연맹체, 데릴사위제(예서제), 부경, 동맹 등이 있다.
고구려는 초기에는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등 5개의 부족 연맹체로 구성된 국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내용들을 잘 구분해서 외워두어야 합니다. 참고로, 부경은 고구려의 수도 외에 지역 행정 중심지로 기능한 도시나 거점을 의미합니다. 고구려는 국내성과 평양성을 주요 수도로 삼았지만, 각 부족이나 지역에 부경을 두어 지방 통치를 효율적으로 관리했습니다.
옥저는 해산물(특히 소금)이 풍부하고 예부제와 골장제가 있다.
옥저는 왕이 존재하지 않고 읍군이나 삼로와 같은 군장들이 각 부족을 다스리는 군장 국가 체제였습니다. 예부제는 신부가 신랑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신랑이 신부 집에 예물을 건네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민며느리 제도로, 신랑이 신부집으로 들어가 일을 하는 예서제(데릴사위제)와는 반대의 풍습입니다. 두 개를 비교하는 문제가 많이 나옵니다.
동예는 방직기술이 발달하고 씨족 사회의 전통(책화와 족외혼)이 강하게 남아 있다.
책화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했을 경우, 소나 말 등으로 배상하게 하는 풍습입니다. 이는 각 부족의 경계가 명확하고 부족 간의 독립성이 강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습니다.
삼한은 제정분리(소도), 밭갈이에 가축이용, 철생산과 수출(변한-일본·낙랑·대방), 초가집 대두, 수전경작을 중시.
소도는 신성한 구역으로 제사장이 다스리는 종교적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정치권력이 미치지 않아 죄인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제정분리를 유추할 수 있고, 변한의 철생산과 수출이 유명합니다. 변한은 나중에 가야 연명체가 형성되는 낙동강 하류 경남 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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