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을 끝으로 매불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안 하려 했는데, 지난 토요일(2025.9.13.) 매불쇼에서 "최욱! 김어준을 말하다!"라고 하는, 어그로를 끄는 제목의 유튜브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어 다시 매불쇼 관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김어준 vs 최욱의 구도처럼 써놓았지만, 실제 내용은 레거시 미디어 vs 뉴미어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매불쇼에서는 주중 방송 중에 이미 이 주제로 녹화가 있었음을 이야기했고 논란이 될 것이라 했지만, 사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저 레거시 미디어의 몰락과 그것을 대체하는 뉴미디어의 역할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입니다.
방송에서는, 경향신문의 김어준(존칭은 생략합니다)에 대한 비판 기사에 대해, 레거시 미디의 위기의식이다, 질투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질투의 발로라는 의견에 더 찬성합니다. 자신들은 국회의원을 취재 대상 또는 인터뷰 대상으로 하기 위해 부탁을 하고 약속을 하여야 하는데, 뉴스공장이나 매불쇼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서로 나오려고 아우성이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 것인가? 자신들은 언론고시를 통과하여 선배들로부터 욕을 먹어가며 기사를 쓰다가 이제 당당히 국회의원과도 밥을 먹으며 기사를 취재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는데, 어디서 인터넷으로 장난 섞인 글이나 쓰던 사람(이것도 이제는 너무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이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 방송계 언저리를 맴돌던 사람한테 뒤지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기서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이만 마치려고 합니다. 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레거시 미디어나 거기에 광고를 주는 광고주들이나, 지원금을 주는 정부나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 이미 60대 이상 조차도 뉴미디어에 의해 뉴스를 접하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고, 성인이 되어 신문보다는 인터넷을 먼저 접했던 지금의 50대가 60대가 되는 10년이 지난다면, 레거시 미디어는 말 그대로 '레거시'로 남을 것입니다.
김어준과의 만남
저는 생각보다 일찍 김어준을 알게 되었습니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친구가 일하는 사무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아주 재미있는 사이트가 있다고 PC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이트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둔 부가 마치 두 개의 산을 이룬듯한 엉덩이 그림의 접점을 마우스로 눌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가면 신문 형식의 화면에서 여러 기사들의 제목이 나열되어 있었고,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으로 보자면 어그로를 끄는, 아주 자극적인 제목들로 클릭을 유도하는, 아주 정상적인(?) 모습의 언론사 사이트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딴지일보'의 시작이었습니다.
키치적, 오타쿠적 B급 코드에 익숙한 저와 친구들은 딴지일보 기사를 읽고 키득거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유행일 뿐이어서 북마크를 하고 가끔씩 들어가기는 했지만 점점 더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러다가 외국에 잠시 살던 중 2011년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에서 다시 김어준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TV 토론 프로에서도 가끔 김어준을 보기도 했지만, 딱히 고정적으로 김어준의 활동을 지켜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꼼수라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방송을 접하게 되면서 개혁가로서의 김어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어준에 대해 다시 관심이 생기면서, 다른 방송들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겨레 TV에서 송출하던 시사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였습니다. 거기에서, 지금은 너무나 오른쪽으로 가버린 고성국 박사라든지, 얼마 전에 조국혁신당에서 문제가 되었던 한겨레 김보협 기자 등을 처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어떤 정치적 성향인지 드러나는 것 같지만, 사실 저는 정치에 관심은 없습니다.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아나키즘적 성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 정치적 성향을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니고, 제가 김어준이나 최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바로 뉴미디어 자체가 진보적 성향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뉴미디어 프로그램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다고 신의한수나 가세연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런 특수한 채널 말고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대중적 뉴미디어 채널은 아직까지는 진보 성향 채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의 장단점
원래 최욱과의 비교를 하려고 했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이번 편에는 김어준의 장단점만을 이야기하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김어준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의 활동을 어떻게 지켜보아왔는지를 장황히 설명한 이유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름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김어준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그가 진행하거나 출연한 프로그램을 많이 본 것이 다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 사람들이 그를 알기 훨씬 전부터 알아왔다는 점에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점
일단 김어준의 대단한 점은 꾸준함입니다. 그의 태도나 성격이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전이나 개선 없이 정체되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재석만 보더라도 예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까불까불하던 모습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진행자로서 남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적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 지위가 변함에 따라 그 지위에 맞게 태도나 성격을 변화시킵니다.
김어준도 스스로 딴지일보 총수라고 너스레를 떨며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와, 여야 불문하고 정치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언론인의 지위에 있는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첫 등장에서 허풍처럼 자신을 조선일보와 맞먹는 언론인으로 자리매김을 해서 그런지 실제로 그런 위치에 있게 된 지금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상대방이 누구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그런 당당함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기 때문에 신뢰를 갖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것이 태도의 문제였다면, 능력으로서의 최대 장점은 통찰력입니다. 어쩌면 언론인으로서는 가장 의미 있는 장점이라 할 것입니다. 스스로도 예언하겠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그 예언이 꽤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점쟁이도 아니고 신의 계시를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정황과 앞뒤의 사정 등을 고려하여 분석하고 추측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추측이 후에 사실과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러한 분석과 추측 즉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MBC에서 한창 '나는 가수다'가 인기가 있을 때, 김어준이 윤도현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나가서 다음 주 나가수에서 탈락할 가수 맞추기를 한 경우가 있었는데, 놀랍도록 잘 맞추었습니다. 그의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대해 예시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통찰력이 창의성이나 혁신으로도 이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즉, 세상이나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아직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는 개혁가가 되기도 합니다. 김어준도 그렇습니다. 딴지일보의 창간도 그렇고 나꼼수의 시작도 그렇습니다. 특히 나꼼수의 경우, 유튜브가 번성하기 직전 과도기로서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유행시켜서 지금의 뉴미디어 전성기의 초석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편에 많이 언급하였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단점
가장 큰 단점은 더 이상 확장 불가라는 것입니다. 김어준은 항상 진보의 아이콘이었고, 진보의 대변인이었습니다. 세부적 사안에 따라서는 진보의 주류 진영과 스탠스를 달리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진보의 테두리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어준의 카운터파트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는 항상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고 보수의 이익을 위한 기사를 썼습니다.
뛰어난 통찰력과 창의성을 갖고 있는 언론인의 말을 반쪽만이 듣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위의 단점이 불가피한 단점이라 한다면, 독선은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즉 천성적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도 어쩌면 불가피한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 통찰을 토대로 단정적으로 말하게 되므로 독선적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강한 자신감은 팬들을 끌어모으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주요한 반대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그러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꽤 오랜 기간 활동해온 김어준의 경우도 팩트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 경우도 있었고, 판단을 잘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변론이 그러했고, 부정선거에 대한 주장도 그러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부정선거에 대한 주장이 아쉽습니다. K값에 대해 여러 주장을 펼치고, 영화까지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고 끝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보다 앞서, 투표소가 갑자기 바뀌었다든지 도로가 마비되었다든지 하는 여러 사유를 들어 부정선거임을 주장했으나, 모두 주장으로 끝나고 입증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에 있어 그런 부정행위가 개입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내란과 다름없는 큰 사건입니다. 실제로 4.19 의거도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만 하고 아무런 입증을 하지 못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제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근래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러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볼 때마다 김어준이 잘못 피운 불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며
생각보다 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글이 길어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간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추후에 수정을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오랜 시간을 결렸으니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올리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더구나 누군가의 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에는 더욱 주의해아 할 것입니다. 평가받는 사람을 아주 잘 알지 못하는 이상, 단편적인 사실만 갖고 잘못된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쓸 때에는 조심스럽게 쓰려고 했는데도,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지 않게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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